두 나라 선거에 日 엔화 값 떨어지고 美 금리 오르고… 이 ETF에 다시 돈 몰린다
일본 엔화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일본 상장지수펀드(ETF)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 국채 엔화 헤지(ISHARES 20+ YEAR US TREASURY BOND JPY HEDGED)’로 국내 투자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최근 치러진 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와 다음 달 초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 영향으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미 장기채 금리가 급등하면서다.
이 ETF는 엔화 강세와 미 금리 하락 국면에서 수익률이 높아진다. 최근 엔화 가치와 미 금리가 3개월 전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저점 매수 기회로 판단하고 해당 ETF를 다시 사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일러스트=챗GPT 달리3
2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는 이달 들어 전날까지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 국채 엔화 헤지 ETF를 5343만달러(약 740억원) 순매수 결제했다. 지난 8월과 9월 이 ETF를 각각 9904만달러(약 1370억원), 3445만달러(약 480억원) ‘팔자’에 나섰던 것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 국채 엔화 헤지 ETF는 엔화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국내 투자자는 이 ETF를 지난 25일 기준 총 7억5979만달러(약 1조500억원) 보유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가 보유한 일본 주식 중 보유금액 기준 1위다.
이 ETF의 수익 구조는 단순하다. 엔화 가치가 상승하고, 미국 장기채 금리가 하락할 때 이익이 커진다. 반대로 엔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고 미국 장기채 금리가 오르면 손실이 난다.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 국채 엔화 헤지 ETF 가격은 지난 7월 25일 1214엔에서 9월 11일 1331엔까지 뛰었다. 엔화 가치 상승과 미 금리 하락이 맞물리면서다. 이 기간 미국 달러 대비 엔화 환율(엔·달러 환율)은 153.93엔에서 142.35엔으로 하락하고,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도 4.5%에서 3.96%로 내려갔다.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일본은행(BOJ)이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까지 맞물린 덕분이다.
그러나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 국채 엔화 헤지 ETF 가격은 내림세로 돌아서 전날 1187엔까지 밀렸다. 고점 대비 10.9%(144엔)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다시 150엔 선을 돌파했고,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도 4.5%를 웃돌고 있다. 3개월 전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일본과 미국의 선거 여파가 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7일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15년 만에 단독 과반 의석을 지키지 못했다. 일본 미즈호증권은 연립내각이 예산안 통과를 위해 야당이 주장해 온 확장적 재정 정책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이라는 긴축 기조를 이어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
미국 국채 금리가 다시 뛴 배경으로도 오는 11월 5일(현지시각) 열리는 대통령 선거가 꼽힌다. 양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집권 후 재정 적자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불거졌다. 재정 적자가 늘어나면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고, 국채 가격 하락(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규모 관세 정책에 따른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나온다.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면 연준도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국내 투자자들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아이셰어즈 20년 이상 미 국채 엔화 헤지 ETF를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로 보고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엔화 약세가 이례적인 수준인 데다가, 기준 금리 인하 국면에서 결국 미국 국채 장기물 금리도 하락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지난 10년(2014년 10월~2024년 10월)간 엔·달러 환율은 평균 118엔, 미국 국채 30년물 금리는 평균 2.9%였다.
다만 단기 투자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황병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한 이유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라며 “견조한 고용 흐름이나 인공지능(AI)이 견인하는 전 세계 민간 투자 회복 기대감 등도 국채 금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대(對)중국 견제를 위해 칩스법(Chips Act·반도체 산업 지원법)을 통해 정책 지원에 나서는 등 민간 투자 확대와 맞물려 장기 금리 상승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권오은 기자 ohe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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