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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이젠 지친다" 백기…방송 접는 여의도 전문가들 [돈앤톡]

첫째 애널리스트가 나오는 모든 영상에 좌표를 찍고 몰려가 악플(악성댓글) 달기
둘째 카톡 오픈채팅·네이버 카페 등 커뮤니티 안에서 집단으로 비난하기
셋째 현수막이나 피켓을 들고 애널리스트 소속 회사 앞에서 1인 시위하기
넷째 애널리스트 내선으로 항의·협박성 전화를 걸고 리테일 담당 임직원들에도 전화 돌리기
다섯째 애널리스트가 분석한 다른 섹터·종목들 게시판에 찾아가 해당 애널리스트 비난하기

최근 만난 어느 애널리스트가 "모두 올해 겪은 일들"이라며 기자에게 전한 내용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이메일과 전화 테러 앞에 애널들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토로였습니다. 개인 주주들의 시장참여가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어느 종목이나 업종이든 확신을 갖는 주주들이 많아지면서 집단화 양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문제는 일부 강성 주주들이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 '집단 린치' 수준이라는 겁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직장인일 뿐일 평범한 일반인에게 특정집단이 몰려들어 사적제재와 사이버불링 등을 하는 셈입니다.
"집주소 알아내자" "사회에서 매장 당해라"…도 넘은 강성주주들
'사기 리포트 낸 ○ 애널을 당장 감옥에 넣어야 한다', '우리 집 개도 내일부터 애널 시켜야겠다, 개나소나 다하는 애널', '○ 애널과 ○ 애널은 매국노임이 분명하다', '○ 애널은 악질 중의 악질, 사회에서 매장 당하길', '○ 애널이 우리 주식을 망가뜨리고 있는데…이젠 집주소를 알아내야 한다' 등.

최근 한두 달 종목토론방과 커뮤니티에 실제 올라온 글들입니다. 얼마나 지은 죄가 크길래 이런 대접을 받냐고요? 놀랍게도 타깃은 평범한 애널들입니다. 오히려 금융 유관기관과 언론이 섹터별 최고 인물을 꼽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죠.

개인 주주들의 감시·견제는 전문가들이 더 신중하게 기업 분석을 할 수 있도록 돕지만 무엇이든지 과도하면 부작용을 불러옵니다. 급기야 최근엔 물리적 마찰까지 빚어져 논란이었습니다. 지난 9일 오후 '배터리 아저씨'로 알려진 박순혁 전 금양 이사를 지지하는 모임 '박지모' 카페 회원들이 길을 가던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의 행로를 막고 가방을 붙잡으면서 항의를 한 건데요. 김 애널은 올해 폭등세를 거치며 이차전지 대표주로 올라선 '에코프로'를 향해 꾸준히 매도 리포트를 낸 인물입니다. 이 사건을 전후로 애널들 사이에선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던 비난이 현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퍼졌습니다.

리포트에서 투자의견을 내렸단 이유로 최근 일부 주주들의 지탄 대상이 됐던 또 다른 애널은 "회사 앞으로 찾아오는 데 그치지 않고 사내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 폭탄을 돌리니 죄를 지은 것 같아 자꾸 눈치를 살피게 된다"며 "(일부 주주들이) 주가가 자신들이 생각한 궤적대로 가지 않으면 뚜렷한 근거가 없는데도 적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유튜브 등 확장성 강한 채널들이 유지되는 한 더 다양한 형태로 항의를 받게 될 것"이라며 "증권가에 이런 집단행동을 막아줄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애널들 희생만 강요되는 이런 관행 속에서 누가 제대로 된 의견을 내려고 하겠나"라고 토로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경험이 있는 한 애널은 "모두가 예민해지는 하락장에서 애널들이 욕을 먹는 건 어찌 보면 필연적"이라면서도 "문제는 최근 들어 비난의 양태가 달라졌다는 데 있다. 우리들에게 '의도가 있다'면서 말도 안 되는 공매도 음모론을 씌우는 것이다. 증권사들이 연간 벌어들이는 이익이 1조원가량인데 이 중 공매도 이익 규모는 5억원 수준으로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강조했습니다. 올 들어서도 애널들이 단기 폭등주에 대해 '매도' 보고서를 낼 때마다 투자자들은 "기관이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다"는 비난을 제기했는데요. 이 점을 염두에 둔 발언입니다.
불신의 프레임·음모론 "이젠 지친다"…방송 접는 전문가들
도를 넘는 집단 행동들에 전문가들은 노출을 꺼리고 있습니다. 모 증권사 한 애널은 "기관들과의 질답은 서로 다 안다는 전제 하에 이뤄지다보니 조금 지루한데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하는 개인들과의 만남에선 새로운 시각을 주는 신선한 질문들이 많다"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에도 공격적인 피드백의 부담이 큰 게 현실이다보니 우리 리서치센터에선 외부에서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아무도 손을 안 든다"고 털어놨습니다. '잘해봤자 본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얼굴 팔리고 비난 받을 빌미만 준다'는 생각이 팽배하다는 겁니다.

애널들만 투자자들의 표적이 된 것은 아닙니다. 2021년 강세장과 작년 하락장 등을 맞춰 유명해진 정광우 86번가 대표도 투자자들의 과한 비난에 외부 방송 활동을 접었습니다. 정 대표는 지난 9일 자신의 채널에 공지글을 올려 방송 출연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는 "전 한계가 분명한 사람이다. 시간을 되돌려서 돌아가더라도 이번 하락을 제 방식으로는 맞추지 못할 것"이라며 "이 점을 방송 시 매번 말할 수는 없다"고 적었습니다.

정 대표는 "우동가게를 차렸는데 메뉴에 없는 스테이크 주문이 들어오는 꼴"이라면서 "여러 성향의 투자자들이 방송을 보는데 혼란만 가중할 것 같다"고 적었다. 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8년간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경제 유튜버이자 평론가로 전업한 인물입니다.

정 대표의 깜짝 선언에 투자자들은 아쉬움보단 응원을 보냈습니다. 투자자들은 댓글을 통해 '제일 믿는 분이어서 이 채널 저 채널 찾아가며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안 나와서 무슨 일 있나 했다', '악플들이 아 스트레스가 컸을 것 같다', '글로는 전달되는 내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쉽긴 하지만 응원하겠다', '다시 업계로 돌아가실까 걱정된다' 등 의견을 보였습니다.

방송에 활발히 출연했다가 최근 그 빈도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한 투자자문사 대표는 "현직 제도권이나 제도권 출신의 전문가들에게 '불신의 프레임'이 씌워졌다고 생각한다"면서 "모두 각자 회사에서 엄격한 컴플라이언스를 거쳐 투자자들에게 공유하는 정보인데 이걸 못믿겠다고 하니 방송 활동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아는' 일부 주주들의 목소리가 너무 강하고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유료화는 숙명…정보의 비대칭 가속화"
이에 여의도는 개인 투자자들이 '제 발등 찍는 격'이라고 경고합니다. 애널 등 많은 투자 전문가들이 개인 들과의 접촉 면을 확 줄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리포트와 영상 등 대부분의 투자 콘텐츠가 무료로 공유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막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취재에 응했던 전문가들 역시 "결국 유료화로 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미국 등 해외 주요국에선 종목 리포트가 유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매도' 의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더디긴 하지만 이미 많은 증권사들이 리포트를 제한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식시장 해묵은 관행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지금, 리포트 저작권 문제도 논의 대상 중 하나입니다. 이런 가운데 개인들의 비난은 유료화 속도를 앞당기기만 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한 증권사 애널은 "공식적으로 발간한 증권사 리포트가 아닌 유튜버들의 발언을 믿고 있다. 신뢰로 먹고 사는 애널들 입장에선 시장 자체의 저변이 크게 줄어드는 셈"이라며 "결국 다 같은 월급쟁이인데 회의감을 느끼는 애널들 중심으로 '엑소더스'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증권사 애널은 "우리 리서치센터는 조만간 유료화가 될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개인들이 어느 애널이 썼는지 파악할 수 있는 채널 자체가 닫힐 전망"이라며 "개인들로선 무료로 접하던 투자 정보의 총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겠지만 우리로선 욕 먹어가면서까지 채널들에 나와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증권사들은 그동안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겠다며 '추천종목'이나 '리포트'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무료가 유료로, 전문 공개가 부분 공개로 바뀔수록 기관투자자 등과 개인투자자 간의 정보 격차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모쪼록 건강한 토론문화와 건전한 투자가 공존하는 시장이 되길 바랍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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