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젠슨 황은 왜 자꾸 삼성전자를 응원할까…SK하이닉스 역대급 이익 좀 놔두면 안되겠니 [투자뉴스 뒤풀이]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를 열렬히 응원한 것입니다. 그는 “삼성이 HBM을 공급한 것이란 사실은 ‘내일이 수요일’이란 말만큼이나 확신한다”고 말했죠. “삼성은 위대한 회사”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HBM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만이 엔비디아에 HBM을 대주고 있죠.
그런데 젠슨황의 삼성전자 응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도 삼성전자를 언급하는 등 종종 삼성전자를 지지하고 기술력을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많은 해석과 분석이 있겠지만, 저도 저 나름대로 젠슨황이 왜 이렇게 삼성전자를 향한 응원을 보내는지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단, 말로만 늘어놓으면 소설과 다를 게 없으니 약간의 재무적 수치를 곁들여서 풀어 나가겠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25’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EPA]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이야기를 하기 전에 SK하이닉스를 좀 보겠습니다. 핵심이 SK하이닉스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역대급 실적이 기대됩니다. 증권사 컨센서스는 연간 매출은 66조, 영업이익은 23조4000억원에 달합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배, 영업이익은 5배가 뛸 것으로 기대되는 엄청난 성장입니다.
AI 열풍과 그에 따른 엔비디아 칩 수요 증가는 SK하이닉스의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죠.
그럼 SK하이닉스가 이렇게 크게 실적이 뛰는데 엔비디아가 얼마나 기여를 했을까요? 정확히 알 수도 있고,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분기보고서를 보죠. 1, 2(반기), 3분기 보고서를 보면 1분기엔 없던 내용이 2, 3분기에 등장합니다.
바로 ‘주요 고객에 대한 정보’입니다. 우리나라는 특정 고객 매출 규모가 전체의 10%가 넘으면 따로 떼어 금액을 공시하도록 돼 있습니다. 어떤 기업의 매출이 특정 고객에 너무 의존하면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이를 알리도록 하는 것이죠. 조 단위 실적을 내는 초대형 기업이 이에 해당하는 공시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SK하이닉스 1분기 공시엔 이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반기보고서에 ‘주요 고객에 대한 정보’가 등장합니다.
공시에 따르면 3조630억원 정도가 특정 고객 ‘(가)’로부터 발생했습니다. 반기 SK하이닉스 매출이 총 28조8528억이니깐 10%를 살짝 웃돌았네요. 전반기(2023년 상반기)엔 없다고 부연 해놨습니다.
SK하이닉스 1, 2, 3분기 공시
3분기에 이 금액은 더 크게 뜁니다. 단 석달 동안 정체 모를 고객 ‘(가)’에게 6조원을 넘게 팔았습니다. 3분기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이 17조5730억원이니깐, 공시 기준인 10%를 훌쩍 넘어 약 35%에 달합니다.
그럼 문제의 고객 ‘(가)’는 대체 누구일까요?
SK하이닉스 측에 확인은 해봤습니다. 고객 (가)가 누군지 묻자 “고객사에 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혹시 엔비디아인지 묻자 “고객사에 대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당연한 답변입니다.
그렇다면 추측을 해야 합니다. 전세계에서 SK하이닉스로부터 불과 3개월 사이 6조원을 넘게 사들일 수 있는 기업이 어디일지 생각해보죠. 더군다나 사들이는 규모가 급격히 늘었습니다. 환율 상승을 감안해도 말이죠.
엔비디아밖에 없지 않나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엔비디아가 아닌 다른 기업이 사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분도 계실 겁니다. 그래서 SK하이닉스 매출에 엔비디아가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정확히 알 수도 있고, 정반대로 전혀 모를 수도 있다고 한 것입니다.
▶미지의 고객 ‘(가)’가 엔비디아라는 전제 하에,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째서 젠슨황은 삼성전자를 이토록 응원하는 것일까요.
엔비디아는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매출총이익율(Gross Margin)은 70%를 넘었습니다. 전체 매출이 느는 것도 놀랍지만, 그렇게 해서 번 돈 가운데 줄 돈(=비용)을 주고 나서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70%가 넘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엔비디아 매출총이익률 추이
문제는 이익률 증가세가 둔화된다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은 만족을 모릅니다. 매출이 아무리 지난 번보다 늘었어도, 늘어나는 폭은 더 크길 바랍니다. 매출 성장폭이 줄었으면 이익 증가폭이 더 크길 바랍니다. 성장을 먹이로 하는 주가라는 괴물은 그렇게 늘 투정을 부립니다.
엔비디아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2024년에도 계속 뛰었지만, 동시에 고점 논란은 지속된 이유입니다. 주가라는 것이 미래 성장 가능성을 현재로 긁어모아 평가한 것(=밸류에이션)이라면, 성장세 둔화는 주가 동력을 약화시키게 되는 것이죠.
엔비디아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요 몇 년 새 이렇게나 가파르게 성장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자신하는데 주식시장은 더 많은 걸 요구하니까요. 반대로 주식시장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 성장은 이미 배불리 먹었으니 또 한 상 가득 차려 보라고 말이죠.
매출을 늘리는 건 전체 시장에 달려 있습니다. AI 수요가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지도 봐야하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경제가 행여나 침체에 빠지지 않을지도 관건입니다. 엔비디아라는 개별 기업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이익률 개선은 엔비디아가 할 수 있는 여지가 큽니다.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납품단가(=원가)를 후려치는 ‘갑질’을 하면 됩니다. 같은 제품을 똑같이 100개 구매하면서 작년엔 100억원 주던 걸 올해는 50억원만 주면 이익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지난해 분기마다 껑충 뛰는 SK하이닉스의 매출과 그보다 더 높게 치솟는 이익률을 보며 젠슨황이 조금 빼앗아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을까요.
그런데 SK하이닉스에게는 갑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SK하이닉스가 아니면 이만큼 수율 좋고 성능이 보장된 HBM을 사올 데가 없으니까요.
▶엔비디아 입장에서 HBM을 거의 전적으로 SK하이닉스에 의존하면 두 가지 면에서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방금 언급한 원가율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의존에 따른 공급 안정성 부실 우려입니다.
실제 엔비디아는 지난 실적발표 자리에서 원가율을 언급했습니다. 매출총이익률이 70% 중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원가 상승으로 일시적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이죠. 엔비디아가 말하는 원가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매출입니다. 힘의 균형이 SK하이닉스 쪽에 유리하단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이미 2025년 납품 계약을 체결해 놨겠죠. SK하이닉스로부터 얼마나 더 많이 사갈지는 모르지만 AI 수요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걸 생각하면 작년보다 줄진 않을 겁니다.
납품 가격을 놓고 적잖은 힘겨루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역학구도를 생각해보면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로부터 받는 HBM 납품가격을 확 낮추는 걸 불가능해 보입니다.
HBM 수요는 AI와 데이터 센터의 지속 성장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렌드포스는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의 매출 비중이 8%에서 2024년 21%, 2025년에는 3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공급사가 키를 쥐고 있는 것이죠.
만약 SK하이닉스 외에 또 다른 공급처가 있다면, 엔비디아는 협상에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원가율을 낮춰 이익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가 다시 시장에서 환호를 받을 수 있게 되겠죠.
[로이터]
두 번째 문제인 안정성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엔비디아는 지난해 3분기 블랙웰 시리즈 출시 지연을 경험했습니다.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가 중요한 것이죠. 급기야 11월엔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젠슨황이 협력 기업을 직접 호명하며 감사함을 표하기까지 했습니다.
엔비디아 반도체 수요가 늘어도 협력사로부터 제때 조달이 되지 않으면 엔비디아 명성과 신뢰에돋 흠집이 나게 됩니다. SK하이닉스라는 검증되고 훌륭한 협력사가 있지만 삼성전자 같은 전통의 강자가 협력사로 추가되면 엔비디아 입장에선 든든하겠죠.
물론 HBM이란 게 어느 날 뚝딱 개발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개발을 하더라도 성능을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당장 SK하이닉스와 거래를 확 줄이거나 납품 가격을 팍 낮출 순 없습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로부터 납품은 비싸게 받아오더라도 추가 협력사에겐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정성과 원가율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것이죠.
삼성전자의 성공을 삼성전자 주주뿐 아니라 잠재적 ‘큰 손’인 엔비디아도 바라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삼성전자는 한국 증시는 물론 전체 경제의 대들보입니다. 모쪼록 반도체가 다시 힘을 내 엔비디아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손을 내미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길 바랄 뿐입니다.
김우영 기자/CFA
#헤럴드경제 기자입니다. CFA 자격증을 취득한 뒤 CFA Society Korea Public Awareness committee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해야 하는 기자로서 사명감에 CFA의 전문성을 더해 독자 여러분께 동화처럼 재미있게 금융투자 뉴스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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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 제무원리와 핵심 개념을 실제 사례로 풀어 쓴 ‘성공하는 투자자는 재무제표부터 본다’(김우영 저 / 위너스북)가 출간됐습니다.
김우영 kw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