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그만하고 적금 들어라” 잔소리하는 엄마…금리 떨어지는데 왜?
4일 매일경제가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올해 1월 말 기준 저축성예금 잔액을 집계한 결과 909조1061억원으로 지난해 12월 말보다 13조9472억원(1.6%) 늘었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 규모는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였다. 재작년 채권시장 경색으로 인한 수신경쟁이 이유였다. 5대 은행의 정기 예·적금은 지난해 1월 말 약 850조원에서 11월 913조8633억원으로 60조원 넘게 증가해 역대 최대 규모까지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정기 예·적금 규모가 전월에 비해 18조7044억원이나 줄어 895조1589억원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리인하 소식 등으로 인해 투자 심리가 다시 살아나는 듯하면서 만기가 도래한 예·적금을 갱신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난 1월 금리가 내려가는 상황에서도 예·적금 잔액은 다시 909조원을 돌파하며 5대 시중은행 기준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를 달성했다.
12개월 정기예금 금리 산정에 활용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무보증·AAA)는 지난해 10월 31일 4.153%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고 연말엔 3.714%까지 내려앉았다. 이후 올 1월 말엔 3.614%까지 떨어졌다. 국민은행의 주요 정기예금 상품인 ‘KB Star 정기예금’의 올 초 12개월 정기예금 금리는 연 3.70%에서 1월 말 연 3.50%까지 0.20%포인트 떨어졌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의 12개월 정기예금 금리는 1월 초 3.70%에서 1월 말 3.53%로 0.17%포인트 빠졌다. 하나·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3.70%에서 3.55%로 0.15%포인트 떨어졋다. 올 초 5대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하던 농협은행도 3.75%에서 3.55%로 0.20%포인트 하락했다.
금리가 하락하는 데도 저축성 예금에 돈이 몰린 것은 이자율이 더 떨어질 것을 감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는 등 금리가 내려갈 여지가 있는 만큼, 더 떨어지기 전에 미리 가입해 두려는 수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홍콩H ELS의 손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현상도 저축성 예금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 초 이후 홍콩H ELS 상품의 손실이 확정되고 예상 손실액도 커져 금융소비자들이 다시 정기 예·적금으로 몰렸다”며 “안전자산을 찾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9일까지 홍콩H ELS의 손실액은 5대은행에서만 3114억원에 달했다.
홍콩 H지수가 5300선에서 유지될 경우 올 상반기 5대 은행에서 해당 ELS를 구입한 투자자는 약 4조원이 넘는 손실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큰 국민·신한·하나·농협 등 4개 은행은 ELS 관련 상품의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연말 연초는 성과급 지급 시즌이기 때문에 뭉칫돈이 예·적금으로 몰렸다는 해석도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 회사들의 성과급 기간이 발표되는 기간이라 늘어난 것 같다”며 “연초나 설 등 명절을 전후로 예·적금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통상 연초에 성과급 지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계절적인 요인으로 1월에 예·적금이 늘어났단 설명이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지만, 시중은행에 몰리는 정기 예·적금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금리인하는 통상 투자심리를 활성화시키지만,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롤러코스터’를 탄 경기와 물가 수준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안전자산’인 정기 예·적금에도 사람들이 몰릴 수 있다는 해석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오히려 커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의 예·적금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양세호 기자(yang.seiho@mk.co.kr), 박인혜 기자(inhyeplove@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