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상법개정 ‘정부안’ 발의 검토 착수…내달 금감원 세미나서 ‘윤곽’ 전망 [투자360]
기재부·법무부·금감원 실무 논의 가동
다음달 금감원 정책 세미나서 ‘윤곽’ 기대
[헤럴드경제=유혜림·서정은 기자] 정부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현행 회사 외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정부안’으로 발의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와 법무부, 금융감독원 등 정부 부처들도 입법 실효성 등을 따져보기 위해 실무 소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찍이 야당도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의제를 선점을 둘러싼 여야 간 샅바싸움도 예상된다.
다만,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소액주주 보호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배임 소송 남발 우려 등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아직은 부처 간 찬반도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도 이사의 행동 기준에 모호성을 가져오는 개정은 경영에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21대 국회서 회의적이던 정부…‘정부안’ 검토=31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으로 상법 개정과 관련해 “여당에서도 (의원 입법이나) 정부에서도 정부안 제출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법안만 놓고보면) 통과 가능성도 커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법 개정은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한 만큼 여야 간 협의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간 학계와 자본시장에선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가 빠져있다는 점을 열악한 지배구조의 원인 중 하나라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해’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소액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는 물적분할·합병이나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전환사채 발행 등을 의결해도 회사에 손실을 주지 않으면 이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상법 개정 논의는 주관부처인 법무부의 제동으로 막힌 듯 보였지만 최근 기재부가 드라이브를 걸면서 기류가 확 달라졌다. 상법 개정에 따른 실익을 따져보기 위해 기재부·법무부·금감원 등 각 부처간 실무 논의도 현재 가동 중이다. 금감원은 내달 12일 상법 개정을 다루는 정책 세미나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기재부가 이례적으로 먼저 참석하겠다고 의사를 전달한 데 이어 법무부도 현재 참석 여부를 조율하고 있다.
업계에선 해당 세미나에서 상법 개정에 따른 실효성, 방향성 등 ‘정부안’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최상목 부총리도 정부안 발의 여지를 열어놓기도 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안을 정해놓은 것이 아니”라면서도 “(대안을) 열어놓고 시장에서 요구하는 여러 대안에 대해 일차적으로 공청회를 통해 3~4개를 1~2개로 좁혀나가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도 부처 간 소통을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주주 이익’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으로 판결이 내려지는 만큼 법으로 고쳐야 할 문제”라며 “(모든 정부 부처의) 의견이 합치돼 있는 상태가 아닌 만큼 (소관 부처인) 법무부와 소통을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간 의제 주도권 싸움으로 이어지나=더불어민주당도 21대 이어 22대에서도 상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할 계획이다.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에 회사의 이익 뿐만 아니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까지 포함하도록 한 게 골자다. 지난 21대에서도 같은 골자의 상법 개정안(이용우·박주민 의원)이 발의된 바 있다.
본래 정무위원회를 지원했던 정 의원은 전날 해당 상법 개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할 계획이었으나 전날 국토교통위원회로 배정받으면서 발의 시기를 재조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통화에서 “발의 준비는 이미 모두 마친 상태”라며 “상법 개정안은 입법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본래 1호 법안으로 생각해둔 의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상법 개정이 민주당의 총선 공약인 만큼 정부가 22대 국회에서 정부안을 선제적으로 내놓고 정책 주도권 선점에 나설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또 정부가 추진하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법인세 인하 등 ‘밸류업’ 인센티브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과 연계시켜 협상 고리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며 강하게 반대하는 금투세 폐지 등 다른 세제 개편안과 연계되면 법 통과까지 난항도 예상된다.
▶“경영활동 위축” 경제계 반발 우려=경제계는 달라진 정부 기류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특히 상법 개정 시 배임 소송 남발 등으로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시장에선 “이사를 영입하려면 소송 리스크를 대비해 막대한 규모의 임원 배상 책임 보험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흘러나온다. 또 법률적으로 주주와 회사는 엄연히 다른 법인격을 갖는다는 법 체계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만약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업무를 집행할 경우 소수주주에게 책임 추궁을 받고 반대로 소수주주가 원하는 바에 따라 업무를 집행하면 대주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며 “이사는 의무불이행으로 인해 매일 동네북처럼 소송에 시달릴 것이고 배임죄 혐의로 법원에 들락날락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미 주주의 비례적 이익은 회사법 최상위 이념인 ‘주주평등원칙’에 따라 보호받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주주 평등의 원칙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모든 자본거래는 회사와 지배주주에게만 이익이 되면서 일반주주에게 손해가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유혜림 forest@heraldcorp.com
서정은 lu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