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피곤한데 12시간이 웬 말이냐"…뿔난 개미들
"12시간 웬 말이냐" 단타족들 불만
업계서도 "변동성 확대" 우려 나와
증권사 출퇴근 시간도 조정될 듯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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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 출범을 앞둔 국내 최초 대체거래소(ATS)가 '12시간 주식 거래'를 내걸었지만 투자자들 민심은 의외로 냉랭하다. '샀다 팔았다'하며 높은 회전율로 승부를 보는 단타족들은 시장 대응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시간 연장으로 인한 부작용이 없도록 출범 전까지 보강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지난 9일 금융위원회는 서울 여의도동 금융투자협회에서 '자본시장 인프라의 질적 발전을 위한 ATS 운영방안' 세미나를 열고 개괄적인 ATS 운영안을 발표했다. 거래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12시간인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넥스트레이드는 한국거래소와 공통으로 운영하는 정규 거래시간 전후로 프리마켓(오전 8시~오전 8시 50분)과 애프터 마켓(오후 3시30분~오후 8시)을 추가 운영한다.
"주식 거래 느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피곤한데…"
넥스트레이드에서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전 종목이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코스피200·코스닥150 등 주가지수 구성종목이 상장될 것이어서 시가총액이 크고 유동성이 풍부한 대부분 종목들은 대체거래소에서도 사고 팔 수 있을 전망이다. 사실상 국내 주식거래 시간이 현행(오전 9시~오후 3시 30분)보다 5시간30분이 늘어난 셈이다.
당국은 직장인도 퇴근 후 편하게 주식투자를 할 수 있게 하는 등의 효과를 기대했지만 막상 투자자들 반응은 신통치 않다. 테마주와 저가주 중심의 '데이트레이딩'(당일 매매) 전략을 펴는 이들이 많은 만큼 피로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이다.
각종 주식 투자자 커뮤니티에서 이를 주제로 올라온 글에서는 비관론이 압도적이다. 어느 데이트레이딩 전문 투자자는 "지금도 피곤한데 굳이 시간을 늘려야 하는가"라며 "주식시장도 코인판처럼 되겠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시간이 늘어진다고 주식 거래가 더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냐"며 "국내 주식을 발목잡는 이유들을 해소해 줘야지 시간만 늘리는 조치는 큰 의미 없다"고 말했다.
실제 거래소 등 금융당국은 2016년 8월 1일부터 종전 오후 3시까지이던 장 마감 시간을 3시30분으로 확대했지만, 해당 한 달 거래량(78억주)은 전년 같은 달(84억주) 대비 오히려 6.7% 줄었다. 시행일 기준 연간으로 봐도 전년보다 17% 넘게 감소하는 등 효과는 없었다.
다른 투자자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던 '시간 늘리기'에 힘 쏟을 시간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부터 결론 내라", "3시반 이후로는 강제로라도 쉬었는데 이젠 잠 못자고 주식차트 보게 되겠네…투자자들을 점점 사지로 몰지 않을까" 등의 의견을 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금융위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금융위
변화를 반기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투자자는 "미국 시간외(프리·에프터마켓) 거래와 겹치기 때문에 미장을 살펴가면서 국내 장에서 바로 대응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국내 증시와 미장이 커플링되고 있는 만큼 더 긴밀하게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현 스플릿인베스트 대표는 "낮에만 문을 열던 편의점이 밤에도 영업하겠다고 발표하는 격인데 불평할 이유가 있나"라며 "변화가 싫으면 기존 시간 안에서 매매하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업계 "주가 변동성 확대될 우려…과도기 대응 중요할 듯"
한편 투자자들뿐 아니라 금융투자 업계에서도 우려를 내놓고 있다. 실적 등 주가와 직결되는 공시가 나오자마자 주식시장에 반영되다보면, 그 숫자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제대로 해석할 시간이 부족해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임원은 "가령 오후 4시 실적 발표를 하고 4시30분 콘퍼런스콜 질답을 통해 실적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하면, 현행대로라면 다음 날 개장 때 주가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에 숫자가 오해될 일은 적다. 밤 사이 수치를 해석할 시간을 충분히 벌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대체거래소가 열리면 콘퍼런스콜이 열리기 전까지 30분~1시간가량은 주가 변동성이 극심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시간 연장은 예상치 못한 애로들을 낳을 가능성이 높아 차라리 대체거래소가 다른 영역에서 차별화를 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이왕 늘리기로 한 만큼 변수가 없도록 초기 과도기 대응에 더 힘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래량이 낮은 증권상품을 악용하는 사례도 더 많아질 수 있다. 넥스트레이드는 법을 개정해 거래 수요가 큰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의 매매도 허용할 예정이다. 개별 주식들은 유동성이 풍부한 중대형주들로 거래가 제한된 반면, ETF와 ETN은 현재로선 전 종목이 매매 대상이다. 거래량이 한두 주 수준으로 극미한 상품의 경우 연기금·공제회 등이 사고 팔기만 해도 주가에 큰 변동성을 줄 수 있다.
여의도 야경도 더 환해질 전망이다. 매매 호가를 꾸준히 대야하는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해야하는 증권사 직원들이 늘어난 업무시간에 맞춰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어서다. 기존 해외주식 야간데스크를 운영해 온 증권사들은 교대 근무시간을 더 촘촘히 하든가, 그렇지 않은 증권사들은 직원을 추가 고용해 오전·오후 추가 업무를 메울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한 직원은 "출퇴근 시간 변동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주식거래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라고 하면 관계 직원들은 개장보다는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하고, 장 마감보다는 그만큼 더 늦게 퇴근해야 한다. 추가 채용을 한 뒤 근무시간 재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돈 넥스트레이드 경영전략본부장은 "어차피 12시간 주식거래를 연다고 해서 12시간 내내 거래를 하는 이들은 없지 않느냐"면서 "퇴근 이후로도 주식거래가 용이해졌다는 점에 주목해 주면 될 것 같다. 한국거래소와 겹치지 않는 시간대는 유동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호가도 보수적으로 잡고 변동성 제한장치도 상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