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뻥튀기 논란…금감원, 증권사에 합리적 공모가 제시 요구
주관사에 공모가 산정 내부기준 마련 의무화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추정실적, 본업과 연관성이 낮은 유명기업들을 비교대상 기업에 넣는 방식 등으로 공모가를 부풀리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국거래소가 상장 당일 가격변동폭(60%~400%)을 확대한 이후 공모가를 비싼 가격으로 결정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사실상 기업공개(IPO) 시장이 투기의 장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IPO 과열]①공모가만 높여 놓고 쏙 빠지는 기관투자자
이에 금융당국이 상장 주관사 역할을 하는 증권사들을 불러 기업공개(IPO)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 강화를 주문했다.
금융감독원은 9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 주관으로 미래에셋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대신증권, NH아문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등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IPO주관업무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김정태 부원장보는 "우리 주식시장이 현재 2805개 종목, 시가총액 2589조원으로 글로벌 주요 시장의 하나로 성장했지만 최근 중요 위험요인 기재 누락, 공모가 고평가 등 IPO주관업무 관련 일련의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관사의 역량과 책임성에 대한 시장신뢰가 크게 실추된 만큼 IPO주관업무의 자율규제 틀을 유지하면서 주관사의 책임성과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IPO시장 신뢰를 높이기 위해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약 4개월 동안 증권사 등 업계 및 금융투자협회 등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의견을 수렴해왔다.공모가 산정 내부기준 마련 의무화
먼저 금감원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공모가 고평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공모가 산정 시 주관사의 내부기준을 의무적으로 마련하도록 했다.
현행 인수업무규정은 공모가 결정절차(수요예측 방법)에 관한 규정만 있다. 이 때문에 과도한 추정실적을 사용하거나 가치가 높은 기업들을 비교대상에 넣어 공모가를 높이는 문제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령 A주관사는 상장예정기업의 직전연도 매출액이 1억원, 당기순손실은 92억원임에도 상장 당해연도 매출액은 48억원, 당기순손실은 43억원으로 추정했다. 이러한 추정 실적을 바탕으로 공모가를 산정하면서 가격을 높였다. B주관사는 상장예정기업이 주류 유통업을 하고 있음에도 글로벌 명품 제조사인 L사, 국내 유명 음료 제조사인 S사를 비교대상 기업으로 선정해 공모가를 부풀렸다.
이에 금감원은 주관사별로 공모가 산정 관련 내부기준 및 절차 마련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내부기준에 맞지 않는 예외를 적용할 때는 내부 승인 및 문서화 절차도 의무화하도록 요구했다. 금투협도 'IPO 공모가격 결정기준 및 절차'를 마련해 증권사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형식적 기업실사 NO…주관사 책임 강화
주관사(증권사)는 상장예정기업에 대한 기업실사를 통해 각종 자료를 검증하고 투자위험 여부도 판단한다.
문제는 현재 주관사의 기업실사업무가 구체적인 실사업무 수행에 관한 내용이 없고 형식적이고 부실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C주관사는 IPO실사 중 회사의 매출액이 1분기 177억원에서 2분기 6000만원으로 급감한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증권신고서에는 이 사실을 누락했다. 결과적으로 1분기 실적만 기준으로 추정매출액을 계산했고 높은 공모가를 제시했지만 실제 실적이 추정치보다 크게 낮아지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금감원은 주관사의 형식적인 기업실사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투자업규정 및 인수업무규정을 바꿔 주관사의 책임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아울러 규정에 따라 실사업무를 수행하지 않는 등 부실한 기업실사에 대한 제재근거도 마련한다. 공시서식에는 실사책임자, 실사검증 절차, 실사의견란을 신설한다.주관사 내부통제 강화·증권신고서 서식 표준화
금감원은 현재 주관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이 선언적으로만 규정되어 있고 내부통제기준에 포함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을 위해 △대표주관계약 체결 전 확인사항 △발행회사 위험 수준에 따른 실사팀 구성, 내부 검토 및 심의 수준 결정 기준 △공모희망가격 범위 및 공모가 결정을 위한 수요예측 결과 반영 방법의 기준 등의 구체적인 필수항목을 인수업무규정에 구체화하도록 했다.
아울러 증권신고서의 중요 투자위험 등 핵심투자판단정보의 기재를 의무화하고, 공시서식을 표준화해 투자자들이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 유용성도 높일 방침이다.
지배구조, 내부통제 취약점 등 한국거래소 심사의 주요 내용을 담아야 하고 주관사의 내부 심의 내용, 과거 주식발행 정보도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또 기업실사, 주관·인수수수료 등은 표준화한 공시서식을 마련하고 투자위험 등의 중복기재를 지양하도록 작성지침을 개정할 예정이다.
주관사의 독립성 제고를 위한 수수료구조도 바꾸기로 했다. 대표주관계약 해지시점까지는 주관회사 업무에 대한 대가 수취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다만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은 수수료는 수취할 수 없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수수료 구성 및 지급조건 등도 투명하게 공시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올해 2분기 내에 금투협 규정 개정 등 제도개선을 신속히 추진하고 제도개선 사항이 조속히 안착할 수 있도록 올해 4분기에 실태점검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보라 (bora5775@bizwatc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