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서 갈아탄 ‘불개미들’…코스닥 반도체 ‘빚투’ 사상최고 경신 [투자360]
지난해 8100억원대 그쳐…1년 사이 2배 넘게 ↑
HPSP·이오테크닉스 등 줄줄이 역대 빚투 최고치 경신
“개인 거래 활발한 코스닥 ‘빚투’…조정 시 불안요인 우려”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최근 반도체 투자 심리가 살아나자 코스닥 반도체 관련주의 ‘빚투(빚내서 투자)’ 금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2차전지 테마를 중심으로 불었던 개미들의 빚투 바람이 올 들어서는 반도체 섹터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는 최근 고개를 드는 금리인하 지연 전망에 위험자산 선호가 약해질 수 있다며 반도체 빚투는 추후 수급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9일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4일 현재 코스닥시장 내 반도체 업종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조7253억원(잔고율 2.73%)을 기록했다. 이는 해당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잔고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을 뜻한다. 코스닥 반도체주에 몰린 빚투는 이달 들어 사상 처음으로 1조7000억원대를 돌파, 현재(8일 기준) 1조7146억원을 나타내고 있다.
작년 말 1조3000억원을 조금 넘었던 코스닥 반도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이달 들어 1조7100억원대로 증가했다. 100여일만에 4100억원 늘었다. 전년 동기(4월 7일·9646억원)과 비교하면 80% 가까이 불어난 수준이다. 지난해 2차전지 투자 광풍에 1분기(1~3월) 평균 7766억원까지 낮아졌지만, 연말 엔비디아를 필두로 반도체 투심이 되살아나면서 반등세를 보인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기업 가치 제고 정책(밸류업) 예고까지 더해지며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세부 종목별로 보면, 반도체 장비 기업인 HPSP의 신용거래융자 잔고가 올 들어 가장 큰 폭(513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 5일 1104억8567만원(잔고율 2.85%)으로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반도체 레이저 공정장비 업체인 이오테크닉스의 신용융자 잔고도 지난 8일 823억5002만원으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코스피 반도체 대형주에 쌓인 빚투는 지난달 말 고점을 찍고 잦아드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달 22일 3132억7000만원까지 치솟다 2557억7000만원으로 570억원 넘게 줄었다. 비슷한 기간 삼성전자도 165억원이 줄어 현재 5072억8000만원을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이 활발하게 거래하는 코스닥 시장에서 반도체 테마가 빚투로 과열되는 것을 우려했다. 최근 시장에선 미국의 조기 금리인하 전망이 점점 미뤄지면서 주식 등 위험자산 선호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변동성이 큰 코스닥 시장이 조정받기 시작하면 빚투는 수급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전체적인 지수가 오르는 상황에서 빚투가 늘어나는 건 상향 베팅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하락 국면에선 일명 ‘물타기’로 버티는 성격이 강하다”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서 비롯된 ‘낙수효과’가 코스닥 중소형주까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될지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간 주가가 억눌려있던 바이오 성장주로 시장 관심이 옮겨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혜림 forest@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