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그라든 글로벌 M&A 시장…3조달러 10년만에 깨졌다
엑손모빌 600억 빅딜에도 작년보다 17%↓
미국 등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 여파로 올해 글로벌 인수합병(M&A) 거래 규모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3조 달러(약 3866조원)를 밑돌았다.
28일(현지시간) 런던 증권 거래소 그룹 분석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M&A 시장에서 이뤄진 총 거래액은 약 2조9000억 달러(약 3737조원)로 나타났다. 이는 작년보다 17% 감소한 수치다.
글로벌 M&A 거래액이 3조 달러 아래로 감소한 것은 유로존 위기를 겪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의 시모나 마엘라레 대체자본그룹 공동대표는 "거래액을 볼 때 2023년 이 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침체됐다"고 밝혔다.
거래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유럽이다. 1년 전보다 28%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25% 줄었다. 미국은 일본의 신일본제철이 미국의 US스틸을 149억 달러(약 19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등 대규모 M&A 계약 영향으로 6% 감소하는 데 그쳤다.
그간 코로나19 영향으로 M&A 시장은 줄곧 감소세를 보여왔다. 여기에 각국 경쟁 당국에서 강력한 규제 정책을 펼치고, 글로벌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사모펀드 시장 자체가 얼어붙었다.
올해 글로벌 M&A 시장의 최대 규모 거래는 에너지 분야에서 나왔다.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이 셰일오일 시추 기업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를 600억 달러(약 77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석유 공룡 셰브론도 원유 탐사·생산 업체 헤스를 530억 달러(약 68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등 빅딜이 성사됐다. 이 외에도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글로벌 제약업체 화이자가 암 치료제 제조업체 씨젠을 430억 달러(약 55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 같은 빅딜이 4분기에 쏠리며 이번 분기에 성사된 거래 규모는 3분기 대비 28% 늘었다.
빅딜이 잇따라 성사되며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던 글로벌 M&A 시장은 지난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시작되면서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대규모 M&A 거래로 4분기 거래액 자체는 늘어났지만 M&A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5억 달러(약 6435억원) 미만 계약은 금액 기준으로는 27%, 거래 건수 기준으로는 6% 줄었다. 마크 소렐 골드만삭스 글로벌 M&A 공동 책임자는 "올해 내내 규제 환경이 까다로웠다"며 "시장 심리가 개선되자 중동에서 분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기업들은 투자자를 찾는 데 난항을 겪기도 했다. 캐나다 자산운용사 브룩필드는 리조트 기업 센터파크스를 40억 파운드(약 6조5560억원) 이상에 매각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경쟁 당국이 제동을 걸어 기업 인수를 포기한 사례도 있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를 200억 달러(약 26조원)에 합병하려 했지만, 유럽연합(EU)과 영국 경쟁 당국에서 이들 회사의 합병이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인수를 철회했다. 750억 달러(약 97조원) 규모에 달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는 여러 차례 발목이 잡히며 21개월 만에 승인됐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둔화된 M&A 시장이 내년 하반기 활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M&A 시장이 둔화하면 성장이나 투자를 원하는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