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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폭등' 이 주식 그냥 뒀다 수천억 손실…'황금알' 포기한 증권사들

증권사들에게 그간 신용공여 및 미수금 이자는 짭짤한 '무위험 사업'이었다. 전체 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가량에 불과하지만 자금운용 효율성이 높고, 주식담보만 잘 관리하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무척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덕연, 영풍제지 등 시세조종 사태가 불거지면서 주가가 폭락하면서 원금의 30% 가량만 회수되는 대규모 부실이 잇따랐다. 증권사 재무제표 전체를 흔들 정도의 손실이다. 황금알보다 리스크만 지는 사업이 됐다.

11일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전체 증권사들의 신용공여 및 미수금 이자수익은 1조414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체 증권사들의 상반기 영업수익이 약 102조9263억원이니 전체 영업수익의 1.4% 수준인 셈이다. 비중이 높지 않지만 증권사로서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벌어들일 수 있는 짭짤한 수익원이었다.

리테일 부문의 비중이 높은 증권사에서는 관련 수익 비중이 업계 평균 대비 소폭 높았다. 키움증권의 올 상반기 전체 영업수익은 약 4조7807억원이었는데, 신용공여 및 미수금 이자수익은 1616억원 수준으로 약 3.4%에 달했다. 세부적으로는 신용공여이자 수익이 1599억원이었고 미수금 이자수익은 17억원이었다.

키움증권은 올 상반기 미수금 이자로 17억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올 하반기에는 미수금으로 대규모 손실을 떠안게 됐다. 지난 10월18일 영풍제지 주가 폭락사태로 4943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키움증권은 영풍제지 종목에 대한 반대매매를 완료했지만 미수금이 4333억원 남았다고 지난달 6일 밝혔다. 올 상반기 미수금 이자수익의 250배가 넘는 거금이다.

영풍제지 시세조종 혐의를 받는 이들은 현재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는 중이다. 검찰은 주가조작 일당이 영풍제지 주식을 총 3만8875회(3597만주 상당) 시세조종해 2789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

키움증권은 이 과정에서 영풍제지에 대한 증거금률을 낮게 유지해 주가조작 세력의 시세조종을 조장하고 손실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영풍제지는 올해 주가가 900% 이상 폭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 시세조종 의혹이 나왔던 종목이기 때문이다. 앞서 다른 증권사들은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영풍제지에 대한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했는데, 키움증권은 금융당국이 영풍제지 주식 거래를 정지시킨 이후에야 100%로 상향 조정했다.

영풍제지 사태가 사실상 키움증권에만 손실을 안겼다면 지난 4월 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의 피해 범위는 더 넓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13개 증권사의 SG증권발 주가 폭락사태 관련 8개 종목 차액결제거래(CFD) 미수채권 규모는 25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대손충당금으로 손실 반영됐다.

올해 상반기부터 이어진 시세조종 의혹들로 인해 증권사들이 영업익에 피해를 보면서 리스크 관리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CFD 사태 이후 증권사 리스크 관리실태를 점검하면서 CFD는 많이 줄었으나 신용매매만큼은 축소하기 꺼려했던 곳들이 많다"며 "그러나 이제는 증권사들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일단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는 정책으로 전환한 만큼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코스닥 기업의 오너 등 주요주주들의 지분 담보대출은 점차 줄어들고 있으나 한편에선 여전히 '빚투'(빚내서 투자)로 아슬아슬한 산길을 오르고 있는 소액주주들도 많다. 시장 전체적으로는 미수, 신용거래 가능종목이 줄어들었으나 이차전지 등 일부 업종과 섹터에선 오히려 신용공여 잔고가 잔뜩 쌓이고 있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당시, 빚투가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을 주도한 바 있어 증권가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신용공여 잔고는 17조3358억원을 기록했다. 공매도 금지 조치 직전 거래일인 지난 3일(16조6248억원)보다 7110억원 늘어났다. 그중 코스닥 시장에서만 5071억원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용공여는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 주가 상승이 예상될 때 이용된다. 지난달 발표된 공매도 금지 조치와 미국 고금리 종료 가능성, 중국 경기 부양책 등에 따른 지수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11월 이후 나스닥을 중심으로 국내 증시가 상승 흐름을 보이면서 잔고가 늘어났을 수 있다"며 "신용거래의 경우 지수 흐름에 발맞추는 경향이 있고, 주식 시장이 바닥을 딛고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고점에 유입된 신용공여다.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의 돈을 빌려 투자한 경우 주가가 오르면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지수 혹은 개별 종목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반대매매'에 노출돼 예상치 못한 대규모 손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매매는 투자자가 빚을 내서 투자한 주식을 증권사가 강제로 청산하는 것이다. 주가 하락으로 주식 가치 평가액이 담보 유지 비율 아래로 내려가면 전날 종가의 하한가로 강제 매도된다. 하한가로 주문이 들어가는 만큼 이는 또 다시 반대매매로 이어져 악순환을 만든다.

이날 한국거래소와 코스콤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신용거래 잔액이 가장 많은 종목은 POSCO홀딩스로 5422억원을 기록했다. 그 뒤를 포스코퓨처엠(3455억원), 삼성전자(3076억원), 셀트리온(2037억원), SK하이닉스(1940억원)가 잇는다.

이차전지주들이 상위 명단에 다수 이름을 올렸다.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나란히 7~9위에 자리했다. LG에너지솔루션(1698억원)도 11위에 올랐다. 코스닥 시장의 에코프로비엠(1955억원)과 에코프로(1744억원)가 각각 5, 10위를 기록했다.

한동안 조정을 받으며 연중 고점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진 이차전지주를 중심으로 빚투가 성횡하고 있는 모습이다. 투자자들의 시선과 증권가의 시선이 사뭇 다른 상황인 만큼, 개인 투자자들의 상승 베팅이 무모한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공매도 금지 후 잔고율 증가 상위 종목은 △아이티센(3.56) △부국철강(3.55%) △제일테크노스(3.37%) △핑거(3.20%) △제룡산업(3.08%) △한국수출포장(3.02%) △아프리카TV(2.77%) △광명전기(2.74%) △엘티씨(2.71%) △파라텍(2.64%) 순이다.

전문가들은 공매도 불가로 과열 제어 수단이 약해진 가운데 빚투는 예기치 못한 손실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권고한다. 올초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 당시, 공매도 불가 종목을 중심으로 변동성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이 관측됐다. 증권업계 관계는 "빚투가 무조건적으로 위험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주가하락시 손실이 배가된다는 점은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재영 기자 (hjae0@mt.co.kr)
김진석 기자 (wls74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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