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의 지각변동…정의선의 현대차, 삼전 누르고 연간 영업익 1위
현대차가 14년 만에 삼성전자를 누르고 사상 처음으로 연간 영업이익 1위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주도 하에 현대차 연간 영업이익이 15조 원을 넘어서며 역대급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2009년 이후 내내 1위 자리를 지키던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라 40조 원이 넘던 연간 영업이익이 7조 원대로 쪼그라들며 3위로 내려올 전망이다. 동시에 연간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는 ‘1조 클럽’ 순위에도 지각변동이 일면서 SK하이닉스와 HMM 등 실적 악화 상장사들의 이탈이 예상된다.
현대차, 삼전 제치고 사상 첫 1위…기아도 2위
9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을 추정한 전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올해 연간 최대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 기업은 현대차였다. 증권사들은 올해 현대차가 지난해보다 54.5% 늘어난 15조 3723억 원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는 이미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으로 11조 652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압도적인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차가 증권사들의 예상대로 4분기에도 호실적을 기록한다면 역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위 상장사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전면 도입 이전에나, 이후에나 단 한 번도 최대 실적 상장사였던 적이 없다. 현대차는 지난해의 경우 삼성전자·HMM에 이은 영업이익 3위 상장사였다.
증권사들이 예상한 연간 영업이익 2위 상장사도 같은 현대차그룹인 기아로 예상된다. 기아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평균 전망치는 전년 대비 67.4% 늘어난 12조 1136억 원이다. 기아는 3분기까지 누적으로 영업이익 9조 1421억 원을 거둔 상태다. 기아는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5위에 머문 바 있다.
업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주도하는 ‘변화와 혁신’ 전략이 그룹의 체질 개선을 이뤄내며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정 회장은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 판매에 집중했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는 정 회장 취임 전인 2020년 상반기 227만 2075대에서 올해 상반기 365만 7563대로 3년 만에 61% 급증했다.
특히 북미·유럽 등에서 해외 수출이 양호하게 이뤄지는 점이 긍정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7월 1일부터 올 6월 30일까지 현대차의 수출 실적은 310억 달러(약 41조 440억 원)로 전년 대비 29.6%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기아도 전년 대비 30.7% 늘어난 235억 달러(약 31조 1140억 원)를 기록했다.
삼전은 3위로 추락…영업익 전년比 83% ‘뚝’
지난 2009년 이후 14년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삼성전자는 올해 3위로 2계단 하락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평균 예상치는 전년 대비 83.3% 급감한 7조 2557억 원이다. 이마저도 증권사들이 4분기 반도체 업황 반등으로 실적 개선을 예상했을 때 가능한 수치로, 실제 연간 영업이익 규모는 더 적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등 반도체 업황 악화 직격탄을 맞으면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올 들어 3분기까지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에서만 약 13조 원에 이르는 영업 적자를 냈다.
삼성전자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24년 동안 스물세 번이나 연간 최대 영업이익 기업으로 군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포스코(현 POSCO홀딩스·포스코홀딩스)에 밀려 2위를 기록한 사례를 제외하면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업계에서는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8조 원 수준으로 쪼그라들면서 순위가 3위까지 추락한 것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2012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10조 원을 넘어선 것을 고려하면 올해 실적이 11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는 평이다.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2013년에는 20조 원을 넘어선 후 2017년에는 30조 원, 2018년에는 40조 원을 차례로 돌파한 바 있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올해 반도체 시장 자체가 워낙 좋지 못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서도 “삼성전자가 14년동안 연간 영업이익 1위 자리를 지켜내는 등 국내 주식시장에서 상징적인 존재였던 것을 감안하면 꽤나 놀라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HMM, 영업익 ‘1조 클럽’서 퇴출
올해 영업이익 순위 바뀜을 겪는 주요 기업은 현대차그룹 상장사와 삼성전자뿐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영업손실만 8조 3649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영업익 1조 클럽에서 아예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누적 영업적자액은 8조 763억 원이다.
주요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지주사인 SK의 연간 영업이익 순위도 2계단 내려갔다. 지난해 4위였던 SK는 올해는 35.2% 감소한 5조 187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순위가 6위로 밀려날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전체 2위 상장사였던 HMM도 영업이익이 9조 9516억 원에서 5640억 원으로 쪼그라들며 1조 클럽에서 발을 뺄 것으로 관측됐다. 업계에서는 HMM의 급격한 실적 악화의 배경으로 해운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꼽는다. 글로벌 해상운송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코로나19 시기에 해운사들이 공급망 악화에 따른 운임 급등의 수혜를 보기 위해 경쟁적으로 컨테이너 선복량을 끌어올리면서 운임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분간 해상 업계의 수급 불균형이 개선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팬데믹 시기에 집중 발주된 컨테이너선의 경우 내년에도 대량 인도가 예상되면서 낮은 수준의 수요 개선으로는 시황 악화를 방어하기 어렵다”며 “올해도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이 부상하며 3분기까지 대형선 위주 선박이 대량 발주돼 신규 공급에 따른 시황 악화는 2026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에 HMM은 최근 몇 년동안 실적 악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반면 증권사들은 대신 순이자마진(NIM) 증가, 유가증권 평가 가치 상승 효과로 지난해 8·7위였던 KB금융과 신한지주가 올해 각각 4·5위에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KB금융의 올해 예상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5.7% 증가한 7조 893억 원이다. 신한지주도 올해 전년 대비 7.93% 늘어난 6조 3551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익 ‘1조 클럽’ 가입사는 10% 감소 전망
올해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을 달성할 상장사는 총 43곳으로 지난해(48개)보다 5곳(10.4%) 더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글로벌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진 데다 미국·중국 등 주요 국가의 경기 회복 속도가 더뎠던 부담이 전반적인 실적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1조 클럽 상장사는 2019년 27개에서 2020년 29개, 2021년 55개로 늘어나다가 금리 상승기에 접어든 지난해부터 2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양지혜 기자(hoj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