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韓 증시 부진한데, 상장사는 꼼수만”
“주주 충실 의무 담은 상법 개정 필요”
오스코텍의 쪼개기 상장 시도,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 올빼미 공시 등 정부의 밸류업(가치제고) 의지에 찬물을 뿌리는 일이 잇따라 터지며 가뜩이나 부진한 국내 투자 심리를 더 흔들고 있다. 실망을 넘어 분노로 가득 찬 투자자들은 “이기적인 기업 행태에 소액주주만 피해 보는 상황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느냐”며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여당이 폐지를 주장하고 야당이 머뭇거린 반면, 상법 개정엔 여당이 소극적이다. 여야 의견이 달라 실제 상법 개정 합의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러스트=손민균
일러스트=손민균
쪼개기 상장 의혹에 이은 올빼미 공시 꼼수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인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이달 13일 2만4550원에 거래를 마쳤다. 1개월 전인 10월 16일까지만 해도 4만3300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불과 한 달 만에 43% 넘게 주저앉았다.
이수페타시스는 반도체 기판 제조업체다. 그러나 이번 주가 급락의 배경은 반도체 업황이 아닌 올빼미 공시였다. 이수페타시스는 이달 8일 이차전지 소재 기업 제이오 지분을 인수하기 위한 대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5500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하고, 이 중 2998억원을 제이오 주식과 전환사채 인수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새로 발행하는 주식 수는 기존 발행 주식의 31.8%에 달한다. 유상증자로 새로운 주식이 발행되면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는 희석될 수밖에 없다. 이 자체로도 악재인데, 이날 이수페타시스는 대규모 유상증자 관련 정보를 시간 외 단일가 매매 시간까지 모두 끝난 다음 슬쩍 공시해 개인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다. 제이오가 이수페타시스보다는 2차전지 계열사 이수스페셜티메디컬에 필요한 회사였다는 점도 이수페타시스 주주들이 불만을 갖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코스닥 상장사인 오스코텍 역시 주가 약세에 시달리고 있다. 오스코텍은 자회사인 제노스코를 통해 유한양행의 국산 폐암 신약 렉라자를 발굴했다. 지난 9월 렉라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덕에 오스코텍과 제노스코는 수백억원의 마일스톤을 확보하게 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주가가 급등해야 정상인데, 오스코텍은 반대로 연일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다. 13일 종가는 2만4400원으로 1개월 전과 비교해 42% 이상 추락했다.
현재 오스코텍이 추진 중인 제노스코 기업공개(IPO)가 주가 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오스코텍은 지난달 21일 실시한 기업설명회에서는 IPO에 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고, 바로 다음날인 22일 기습적으로 IPO 계획을 알렸다. 주주 입장에선 ‘깜깜이 상장’ 발표 자체도 못마땅한데, 제노스코 상장 시도가 사실상 물적분할(쪼개기 상장)을 통한 지분가치 희석으로 인식되다 보니 불만이 더 커지는 것이다.
한 시민이 서울 남산타워에서 주요 기업 빌딩이 밀집한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한 시민이 서울 남산타워에서 주요 기업 빌딩이 밀집한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이사가 주주를 위해 일하게 만들어야”
최근 한국 증시가 주요국 대비로도 유독 부진한 상황에서 상장사들의 꼼수마저 연거푸 나오자 개인 투자자들은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주주를 기만하는 기업의 이 같은 행태를 바로잡으려면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일하도록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에서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긴 하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상법 개정과 증권거래세 복원을 내세운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민주당에서 추진 중인 상법 개정은 상법 제382조의 3에 명시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의 이익 보호’에서 ‘회사·주주의 이익 보호’로 바꾸자는 것이다. 지배주주의 경영 행위로 발생하는 소액주주 피해를 줄이면 기업 지배구조가 개선돼 주식시장 저평가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 논리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연내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상법 개정에 대한 재계 반발이 크고 정부·여당의 입장도 달라 실제 법 개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달 5일 “기업 주주에는 외국인 투자가, 기관투자가, 사모펀드, 소액주주 등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주가 있다”며 “이해관계가 다른 주주의 이익을 위한 충실 의무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주주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입장에 개미들은 들끓고 있다. 삼성전자가 4만원대를 향해 가고 있고, 우리나라 증시 전체 거래대금이 비트코인 하나만 못한 상황에서 시장 환경을 개선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개인투자자는 “우리나라 기업을 지지하고 싶어서 한국 증시에 투자한 개미들을 몰살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여당은 금투세 하나 폐지시켰다고 할일 다 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지금 주식 커뮤니티 분위기는 민주당 지지 쪽으로 완전히 쏠려 있다.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위기”라고 경고했다.
박지영 기자 jyou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