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만 살아남는다" 뗏목 타고 회사로…한국인의 '출근 중독'[뉴스속 용어]
다른 국가에 비해 유난히 높아
홍수엔 뗏목을, 폭설엔 스키를 탔다는 90년대 출근길. ‘강자만이 살아남는 90년대’란 밈(Meme)을 대표하는 콘텐츠 중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든 출근해야 한다는 ‘의지의 한국인’ 정신은 현대 사회에 직장인들이 ‘프리젠티즘’을 겪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홍수로 뗏목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사진출처=유튜브 크랩(KLAB)]
홍수로 뗏목을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사진출처=유튜브 크랩(KLAB)]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은 영어단어 '출석하다(Present)‘와 '상태' 또는 '중독'이라는 뜻인 접미사 '-ism'의 합성어다. ‘출근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질병을 앓거나 피로, 업무 스트레스 등의 영향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도 직장에 출근하는 관행을 일컫는다. 반대말은 앱센티즘(Absenteeism)이다. 아파서 쉬는 결근 또는 결근율을 의미한다. 두 가지 용어는 기업이 생산성 손실을 경험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한국의 프리젠티즘 비율은 다른 국가에 비해 유난히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한국의 상황을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아파도 출근한 사람’ 비율은 23.7%다. ‘아파서 쉰 사람’의 비율인 9.9%의 2.37배다. 유럽 국가의 평균인 0.81배에 비해 훨씬 높다. 프랑스와 스페인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아파서 쉰 비율이 출근한 비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젠티즘이 앱센티즘보다 문제인 이유는 ‘겉보기엔 괜찮다’는 것이다. 적어도 정상적으로 출근한 상태여서 기업은 조직원에게 관심을 덜 기울이게 된다. 조직원 개인도 자기 몸 상태를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양측 모두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가능성이 크다. 프리젠티즘이 반복되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깨져 중·장기적으로 개인의 직업적 삶과 건강에 위험을 초래한다. 아울러 프리젠티즘은 주변 동료의 생산성에 영향을 준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전염병이 직장 내에 확산하면, 회사 전체의 생산성은 심각하게 떨어진다. 기업 입장에서 생산성 악화는 비용 상승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사진출처=픽사베이]
한편 장시간 노동은 프리젠티즘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0년 강모열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교수팀과 이동욱 서울대 의대 연구강사 연구팀은 ‘근로시간과 건강 관련 노동생산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주당 근로시간이 증가할수록 건강 관련 노동생산성 손실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분석에 따르면,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 이상' 그룹은 '40시간' 그룹보다 건강 관련 노동생산성 손실이 남성은 5.1%, 여성은 6.6% 더 발생했다. 연구팀은 “생산량 증가를 위한 장시간 노동은 장기적으로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악화시킨다”며 “오히려 노동생산성이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주 4일 근무가 노동환경을 개선한다’는 주 4일제 시범사업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지난해부터 1년간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주4일제 시범 사업’을 벌인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주 4일제 시범 사업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신촌 1개 병동의 사직률은 ‘0%’였다. 전체 실험 병동의 병가 사용(1·2인실 병동 제외)은 시행 이전보다 절반가량 감소했다. 수면장애, 근골격계 질환, 우울감 등이 줄었고, 프리젠티즘은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호경 기자 hocanc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