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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독신女의 결심…“내 재산 놓고 가족들 싸울라, 안전장치 마련”

4대은행 신탁잔액 3조 돌파
상속 대신 기부 선택도 늘어
하나銀 기부신탁 누적 1400억

은행권, 맞춤 서비스 선보여
전문인력·상담거점 늘리고
최저 가입금액 문턱도 낮춰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60대 독신 여성인 김 모씨는 최근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형제 자매가 있지만 어머니가 작년 세상을 떠난 뒤 왕래가 끊겼다. 고민 끝에 암 투병 중에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사후엔 모교에 기부할 수 있도록 수십억원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은행에 신탁했다. 김 씨는 “남은 가족들이 재산 다툼을 벌일까 두려워 안전장치를 해놓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금융사의 자산 신탁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상속 배분 등을 맡기는 유언대용신탁뿐 아니라 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기부 신탁에 대한 관심도 커져 시중은행들이 관련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지난 1분기 3조299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21년 말(1조3367억원)의 2.5배로 늘었다.


유언대용신탁은 고객(위탁자)이 금융사(수탁사)와 계약을 맺고 재산을 맡은 후 배우자·자녀 등(수익자)에게 배분하는 상품이다. 고객은 생전엔 금융사를 통해 재산을 관리·운용하고 사후에는 수익자에게 언제 어떻게 재산을 지급할지 등을 자기 뜻대로 설계할 수 있다.

장년층 사이에선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기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까지 지난 3년여간 하나은행의 유언대용신탁 가운데 부동산과 금전 등을 학교나 병원 등에 기부하기로 설정한 금액은 1386억원으로 집계됐다. 기부 신탁을 결정한 사람들의 연령대를 보면 70세 초과가 42.9%로 가장 높지만 70세 이하(34.3%)와 60세 이하(22.9%)도 적지 않았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소중한 재산이 가족과 사회를 위해 의미있게 활용될 수 있도록 상속 설계를 하려는 고객이 50·60대 ‘뉴시니어’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며 “특히 선진국처럼 미성년자나 장애인 등 사후에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싶다는 상담 건수가 매년 두드러지게 늘고 있는 점은 가족을 위한 신탁이 주를 이뤘던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에선 유언대용신탁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은행권 신탁 1위인 하나은행은 2010년부터 금융권 최초로 ‘하나 리빙트러스트’ 브랜드로 유언대용신탁 상품·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4월 은행이 유언장 작성을 돕고 금고에 보관한 뒤 집행까지 맡아주는 유산정리 서비스를 내놨다.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휴사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김앤장과 유언대용신탁 활성화를 위한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외에도 제휴사는 법무, 세무, 병원, 상조, 기부단체 등 110여개에 달한다. 올 하반기엔 담당 부서 인원을 더 충원할 계획이다. 자산관리를 비롯해 증여, 상속, 기부 등에 대한 종합 상담이 가능한 ‘하나 시니어 라운지’도 현재 을지로, 삼성 등 2곳에서 목동, 분당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고객의 가족·회사·재단의 모든 자산을 관리해주는 맞춤형 자산관리 자문 서비스인 ‘패밀리 오피스’를 통해 재산 배분과 기부 신탁을 지원하고 있다. 재단 설계부터 설립 단계별 실행 과정에 대한 컨설팅과 운영을 위한 법규준수에 대한 컨설팅도 제공한다. 최근 ESG 경영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은행이 사회적 책임 실천 방안에 대한 고민까지 대신 해결해주는 셈이다.

신한은행은 최근 유언대용신탁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한 ‘신한 신탁라운지’를 열었다. 우리은행은 유언대용신탁의 가입금액을 금전 5억원에서 5000만원으로 낮추는 등 신탁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속·증여 이슈 대상자가 자산가에서 일반 대중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겨냥한 것이다.

은행권에선 유언대용신탁 등 신탁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65세 이상 고령층으로 진입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등 인구구조의 변화 외에도 하반기 생명보험청구권신탁이 허용되는 등 제도 변화가 예상되고 있어서다.

임영신 기자(yeungim@mk.co.kr),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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