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땅부자에 현금도 8000억 알짜"…복사기 회사의 '변신'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신사업 활로 뚫을까…현금부자로 투자은행 관심 받아
"성수동 땅부자에 현금도 8000억원이 넘는 알짜회사예요."
신도리코는 1960년 출범 이후 복사기 사업에만 전념했다.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오뚜기 녹십자 한일시멘트 등 개성상인의 후예들이 세운 다른 기업들처럼 한 우물·무차입 경영을 이어갔다. 덕분에 보유현금은 8000억원을 넘어섰다. 서울 성수동에 넉넉한 부동산도 확보했다. 하지만 보수적 행보로 시가총액은 3000억원대에 불과했다. 최근 이 회사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투자은행(IB) 전문가를 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IB 업계에서는 "신도리코가 '인수합병(M&A) 다크호스'로 떠올랐다"는 말이 퍼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과 업계에 따르면 신도리코는 오는 3월 2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서동규 사장(사진)을 신규선임하는 안건을 처리한다. 서 사장은 지난 1월에 이 회사 대표이사(사장)로 내정된 바 있다. 서 사장은 삼일회계법인 대표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역임했다.
속초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0년 OB맥주(옛 동양맥주)에서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공인회계사로 변신해 1994년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다. 삼일회계법인에서 M&A·기업실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ADT캡스, 현대증권, 팬오션 등에 대한 매각자문 작업을 지휘했다.
IB업계도 서 사장의 등장에 상당한 관심을 보내고 있다. 서 사장의 선임은 '보수적 경영'을 이어가던 신도리코가 M&A·신사업으로 사업 활로를 뚫겠다는 의지로 읽혀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신도리코는 현금과 자산이 풍부한 회사로 서 사장 선임을 계기로 신사업 매물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며 "M&A 자문사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도리코는 복사기와 프린터 등의 기능을 갖춘 사무용 복합기 시장에만 집중했다. 이 회사는 1960년 개성상인이었던 고(故) 우상기 회장이 세웠다. 일본 복사기 회사인 리코와 합작 형태로 기술을 들여와 처음으로 토종 1호 복사기를 만들어 시판했다. 개성상인이 세운 다른 기업들처럼 무차입·한 우물 경영을 이어가는 대표적 회사로 꼽혔다.
재무구조와 실적도 우수한 편이다. 지난해 9월 말 누적 영업이익은 220억원에 달했다. 이 회사의 지난해 9월 말 현금성자산(현금, 장단기 금융상품 등)은 8080억원에 달했다. 부채비율은 9.6%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말 보유한 성수동 일대 부동산 장부가치는 853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가는 이를 큰 폭 웃돌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비해 이 회사의 이날 시가총액은 3639억원에 불과했다.
이 회사가 신사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은 실적 부침이 커지는 것과도 맞물린다. 신도리코는 1960년 출범 이후 2019년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2020년에 코로나19로 재택근무 흐름이 이어지면서 사상 처음 적자를 냈다.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경영에 따른 '종이 없는 사무실' 문화가 확산한 것도 회사 실적에 영향을 줬다. 그만큼 실적 출렁임도 심해졌다. 신도리코가 변화를 꾀하는 배경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