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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울리는 불법 사채의 늪… “100만원 썼더니 두 달 만에 빚 2000만원 돼”

재판 넘겨져도 “반성했다” 한 마디에 집행유예
법정 최고금리 20%로 인하… 서민들 불법 사채로
野, 대부업 최고금리 15%로 또 인하 추진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 수거한 불법 대부업 광고 전단지. /연합뉴스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이 수거한 불법 대부업 광고 전단지. /연합뉴스

직장인 A(36)씨는 지난달 초 급전이 필요해 불법 사채업체를 통해 100만원을 빌렸다. 조건은 일주일 뒤 원금 100만원과 이자 80만원 등 180만원을 상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A씨가 돈을 마련하지 못하자 업체는 연체비를 요구했다. 원금·이자 전액을 한꺼번에 상환하지 못할 때마다 별도로 하루 30만원을 내라는 것이었다.

A씨가 연체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업체는 추심을 시작했다. A씨의 아내와 지인들에게 연락해 돈을 갚으라고 협박했다. 아내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해 소셜미디어(SNS) 등에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결국 A씨는 다른 불법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 돌려막기를 했고, A씨 빚은 두 달 만에 2000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A씨는 여전히 돈을 갚지 못해 불법 대부업체로부터 빚 독촉을 받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된 후 여러 정식 대부업체들이 개점 휴업에 들어가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불법 사채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불법 계약을 무효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지만, 무법지대에 있는 사채꾼들의 협박까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반응이 많다. 이에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겠다며 시작된 최고금리 인하가 도리어 서민들을 벼랑으로 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법적으로 미등록 대부업자 등 일반인은 연 25%, 등록대부업자 등은 연 27.9%를 초과해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최고금리는 대통령령에 의해 이 범위 안에서 정해지는데, 지난 문재인 정부는 최고금리를 2018년 2월 24%로, 2021년 7월 20%로 각각 낮춘 바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불법 사채 적발해도 처벌 솜방망이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금감원 불법 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피해 상담·신고 건수는 6784건이었다. 2022년 한 해 동안 1만913건이 접수된 점을 고려하면 피해 건수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접수 건수는 2019년 5468건, 2020년 8043건, 2021년 9918건 등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금감원에 신고한 피해자들은 구제를 받았을까. A씨 등 피해자들은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재판에 넘겨져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에 불법 사채업자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아 불법 추심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A씨 역시 불법 추심을 일삼은 업체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불법 사채업자의 연락처도 없고 추적이 쉽지 않은 소셜미디어(SNS)를 사용하기 때문에 검거가 쉽지 않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업자들이 처벌 받기가 힘들다는 점을 알고서 ‘경찰서 가서 신고하라’는 식으로 나온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중앙지법 전경. /조선DB
서울중앙지법 전경. /조선DB

대법원이 공개한 대부업법 위반 형사사건 판결문을 보면, 최근 2년 동안 14건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무죄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실형이 선고된 것은 3건 뿐이었고, 이 중 2건은 항소심에서 감형돼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91회에 걸쳐 최고금리 이상의 이자를 받고 채무자들에게 협박을 일삼았던 B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 지속적 협박을 통해 연 이자 437%를 받아낸 C씨에게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들은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해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항소심에서 감형됐다.

文 정부, 최고금리 인하 후 대부업체 줄폐업

금융권에서는 서민들이 불법 사채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이들에게 돈을 빌리는 이유는 최고금리가 인하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연 20% 이자로는 수익이 나지 않아 정식 대부업체가 대출 규모를 줄이거나 문을 닫으면서 저신용자(6~10등급)에게 돈을 빌려줄 곳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부업체들도 시장금리에 따라 돈을 빌려 대출을 하는데, 시장금리가 상한선(연 20%)에 이를 정도로 높아지면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말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잔액은 12조514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조755억원 감소했다. 전년(15조8678억원)과 비교해서는 3조3532억원 감소했다. 서민금융원구원의 ‘최고금리 인하의 저신용계층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업 대출이 거절돼 불법 사금융 시장을 찾은 저신용자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은 24조4000억원에 달했다. 반면 최고금리 인하로 절감된 이자 규모는 4조4000억원에 불과했다.

그래픽=이은현
그래픽=이은현

이 같은 상황에서도 최근 정치권에서는 최고금리를 더 낮추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서영교 의원이 법정 최고금리를 현 20%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달 발의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는 최고금리를 올리거나, 최고금리가 시장금리에 따라 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고금리는 고리대금을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한하는 제도”라며 “최고금리를 높인다 해도 금융권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과한 이자를 받겠다고 하면 오히려 대출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현재와 같은 금리 수준이라면 최고금리를 올리는 게 정상”이라며 “정치권이 최고금리를 대출금리라고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이학준 기자 hakj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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