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마약청정국' 지위 회복 최선"…가능할까
"우리 모두는 국적과 문화가 다릅니다. 하지만 명백하고 확실한 하나의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마약 없는 청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지난 7일 부산에서 열린 '제30회 마약류퇴치 국제협력회의'의 개회사를 열며 이렇게 말했다. 마약 문제를 취급하는 국내외 기관 관계자가 모여 최신 동향과 대응 방식을 공유하고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재개된 회의는 북적였다. 대검찰청도 이 총장의 발언이 한창일 때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대한민국의 '마약청정국 지위 회복'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총장의 옆자리는 존 스캇(John Scott) 미국 마약단속국(DEA) 아태지역 본부장 차지였다. 이 총장의 개회사 이후 연단에 오른 그는 보다 단도직입적이었다. 간단한 인사 뒤 첫 문장은 "모든 지역과 국가의 마약 상황이 다르지만,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이 주요 마약으로 선택된단 점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는 거였다. 필로폰의 주성분이자 중독성 강한 신경 각성제인 메스암페타민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이 남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꼽힌다. 이어 그는 메스암페타민의 주요 생산지와 유통 창구를 언급했다. 주제별로 마련된 본격 세션에 앞선 축사인 점을 고려하면 내용이 꽤나 구체적이라는 인상을 줬다.
이날 회의 종료 직후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존 스캇 본부장을 붙잡았다. 이메일과 행사를 주최한 대검찰청을 통해 수차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언론 인터뷰는 두 달 전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며 고사한 그였다. 난처해하는 그에게 "이 총장이 언급한 '마약 없는 세상(A world without drugs)'이 가능한 목표라고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Honestly, I think that's impossible in the current situation)"라고 답했다. 이유를 물으려는 찰나, 다음 만찬 일정 탓에 그의 걸음을 재촉한 관계자가 끼어들었고 대화는 중단됐다. 스캇 본부장은 인터뷰가 가능한지 검토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마약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면 어째서일까.
정부는 '마약청정국' 향하는데
마약 없이 깨끗한 나라. 윤석열 정부의 지향점은 이 총장의 개회사 표현대로 명백하고 확실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1일 경찰의날 기념식에서 "우리 미래 세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꼭 승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본격적인 전쟁을 여는 선전포고였다. 그보다 한 달 전 국무조정실 마약류대책협의회에서 "'마약청정국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범정부의 역량을 총결집하겠다"는 발표가, 8일 전엔 한동훈 법무장관의 "마약 범죄와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달라"는 검찰을 향한 당부가 있었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정표 위에 길을 깔았다. 대통령 발언 5일 뒤 당정협의회에서는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이 논의 됐고, 관계부처 합동 수사가 시작됐다.
국제연합(UN)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이 20명 이내일 경우 마약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21년 인구 10만 명당 마약사범 수가 31.2명을 기록하며 그 지위를 잃었다.
마약청정국 재탈환.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회의에 참석한 여러 전문가들이 쏟아낸 분석과 전망을 보면 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짐작이 쉽다.
① 촘촘해지는 세계 마약거래망
이원석 총장은 "가상화폐와 다크웹, 드론을 이용한 마약류 밀거래 문제가 일상화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라며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 거래를 함께 차단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완전 차단'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는 세계적으로 마약 거래가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에서 자유로울 나라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령, 전 세계적으로 마약 거래의 중심에 있는 메스암페타민을 주원료로 하는 필로폰 시장은 동남아시아·동아시아 지역과 미국·캐나다·멕시코 등 북미 지역이 양분한다. 두 지역에서 적발되는 필로폰 양은 전 세계의 90%를 차지한다. 특히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이라 불리는 태국·라오스·미얀마 접경지는 마약 주요 생산지로, 세계 마약류의 25%가 이곳에서 제조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이날 회의에서 공개한 메스암페타민 압수량을 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동남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91.4%에 달할 정도로 월등하다.
발표에 나선 유엔마약범죄사무소 분석관은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메스암페타민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태국에서 2020년에 메스암페타민 1kg의 값이 8,800달러였다면 지난해 4,200달러로 절반 이상 싸졌다"고 설명했다. 거래가 늘어난 건 마약의 가격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접근성이 높아지면 거래도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다른 마약류도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적발 약물로 꼽히는 동물 마취제 케타민도 태국에서 유통 가격이 2020년 1만 2,000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8,000달러로 내려갔다. 진정제의 일종으로 중독성이 매우 강하고 부작용이 심한 헤로인의 원료로 쓰이는 아편도 마찬가지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해 4월 양귀비 재배를 금지하자 양귀비 열매에서 추출하는 아편 생산이 95% 급감했다고 진단했다. 재배 면적이 지난해 말 23만 3,000ha(헥타르·1㏊=1만㎡)에서 올 들어 1만 800ha로 줄어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지역에서 줄어든 생산량만큼 다른 곳에서 생산을 늘릴 거란 전망이다. 마약 시장에서도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분석관은 "전 세계 아편 재배의 70%를 차지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이 줄어든 만큼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을 늘릴 것이고 헤로인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 내다봤다.
저렴해진 마약 가격은 국내 상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값이 싸면 이를 취급해 중간에서 수익을 남기려는 판매자가 늘기 마련이다. 가격뿐 아니라 SNS 등 다변화된 창구로 문턱도 낮아져 손을 대기도 쉬워졌다. 실제 마약 밀수는 지속적인 증가 추세다. 국내 유통 마약은 거의 전량 해외에서 밀수입되는데, 압수된 밀수 마약은 지난 2020년 242kg에서 2년 만인 지난해 561kg으로 2.3배 늘어났다. 올해에는 8월까지 집계된 게 518kg에 달한다.
회의에 참석한 심인식 유엔마약사무소 선임연구관은 "예전에는 10kg의 필로폰을 갖고 들어오려면 상당한 양의 돈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약 가격이 정말 많이 내려갔다"며 "그게 우리나라에서 마약 시장이 확대된 요인이기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마약 시장이 커가는 것은 (교역량이 많고 마약의 주요 밀반입 창구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쪽의 마약 시장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한국의 마약 시장이 줄어들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국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고, 마약 밀반입 관련 대응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문제라면 뒷문은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② 너무 넓은 뒷문
유엔마약범죄사무소 분석관은 또 "헤로인과 케타민 등을 투약용으로 제조하려면 화학물질이 필요한데, 국제적으로 이 화학물질 유통을 규제한다면 다크넷(Dark-net)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규제할수록 음지로 파고드는 지하경제의 습성 탓이다. 기술의 발달은 지하경제에도 판을 깔아준다. 회의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인공지능(AI)과 가상화폐 등 첨단 기술이 조직적인 마약 범죄를 활성화하고 있고, 마약 비즈니스를 유지하고 키우는 데 크게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크넷은 접속하기 위해 특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접속이 가능하고 IP주소가 공개되지 않는 암호화된 네트워크로, 이 네트워크 속 다크웹(Dark-web)은 마약 시장의 온상으로 꼽힌다. 지난 2013년 미국 FBI가 온라인 마약 거래 웹사이트인 실크로드를 적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다크웹은 이용자수가 2012년까지 62만 명에 불과했다. 현재는 하루 평균 접속자 수가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블록체인 분석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지난해 전 세계 다크웹 시장 규모를 15억 달러(약 1조 9,800억 원)로 추산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지난해 발간한 '세계마약보고서'에서 2021년 다크웹을 통한 전체 거래 중 91%를 마약 거래로 추정했다.
다크웹에선 사이트를 열고 닫는 게 쉬워 수사가 시작되면 폐쇄하고, 새 사이트를 여는 식으로 범죄가 이어진다. 검찰은 올 2월 마약 관련 다크웹 전담수사팀을 꾸려 대응에 나섰지만, 수사 인력은 수십 명에 그쳐 팽창하는 다크웹 범죄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크웹만큼이나 걸림돌이 되는 건 규제 영역 밖의 화학물질을 조합한 합성마약류의 유행이다. 최근에는 아편처럼 재배해서 추출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손쉽게 제조할 수 있는 합성화학물질의 마약 제조와 거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신종 향정신성 물질 NPS(New Psychoactive Substances)가 대표적이다. 공장 체계로 효율화가 가능하다 보니 인프라를 갖춰 놓고 역할을 세분화하는 등 조직화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조직화는 가격을 떨어뜨리는 배경이 된다. 발표에 나선 국제마약감시기구(INCB) 관계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NPS가 1,200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300종 정도가 국제적으로 규제되고 있고 나머지는 비규제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4종 중 3종은 국제 당국의 감시망 바깥에 있는 것이다.
규제 영역 안에도 위험은 도사린다. 당국은 중독성 의약품의 처방 건수가 크게 늘어나는 점에도 주목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의료기관 2곳 이상을 방문해 프로포폴을 처방받은 환자가 2019년 48만 8,000명 수준에서 지난해 67만 6,000명으로 4년 사이 약 40% 폭증했다.
존 스캇 미국 마약단속국 아태지역 본부장은 "지역사회에 펜타닐이 침투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미국은 매년 11만 명이 약물 중독으로 인해 사망하는데, 대부분 약이 의료용 처방으로 둔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진통제 펜타닐은 미국에서 교통사고와 자살 등을 제치고 18~49세 사망 원인 1위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자국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10만 명 가운데 80% 이상이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속속 펜타닐 악용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은 지난 6월 환자 1명에게 4만여 명 치사량인 펜타닐 패치 4,800여 장을 처방해 준 의사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의뢰 건수만 봐도, 2016년 0건이었던 펜타닐은 지난해 300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③ 제한적인 접근 방식
그러니까 우리 정부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당국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국내 상황만 놓고 보면 단순 적발 건수 위주의 측정은 한계가 뚜렷해 프레임(Frame)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마약 범죄는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추측할 뿐이다. 검찰 등은 마약 범죄에 있어 수사기관에 적발되지 않은 '암수율'을 10배 정도로 추정해 왔다. 2019년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이 연구해 한국경찰연구학회가 발행한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 연구' 논문은 국내 마약 범죄 암수율을 28.57배로 측정했다. 박 교수는 "단순히 적발 건수 등 수치가 실적으로 직결되면 실무 수사에 있어서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 적발을 담당하는 기관 간 경쟁으로 정보 공유의 틈이 그만큼 좁아진다는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적발 건수가 늘면 국가의 통제책이 실효적이지 못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어 정권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게 되는 한계로 꼽아왔다. 마약사범 검거 건수는 집중 단속을 벌일 때 늘고 단속이 뜸하면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적발, 검거된 마약사범이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건 1999년이다. 2003년~2006년까지 4년 간 7,000명 선으로 내려갔고, 2010년~2014년까지 또 1만 명 아래를 기록했지만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는 1만 명 선을 유지했다. 경찰과 검찰의 그다지 등락폭이 크지 않은 수사 인력 상황을 고려하면, 인력과 에너지를 투입한 만큼 적정 수준으로 적발해 온 셈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는 지난 9월까지 검거된 국내 마약사범이 2만 231명이다.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6% 늘어난 수치다. 처음 1만 명을 넘긴 1999년 이후 24년 만에 1만 명이 늘어난 건데, 인터넷의 발달로 유통 창구가 다양해졌고 미디어의 영향과 노출도 크게 늘어난 점 등을 고려하면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건 과장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만큼, 여느 정권 때보다도 수사에서 '열일을 했다'고는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늘어난 수치만 놓고 "국내 마약류범죄의 확산세가 심각하다"는 등 평가하는 건 어폐가 있다.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 수 없는 '마약 시장(Drug Market)'은 늘 있어왔을 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와 같이 성장해 왔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검거 수가 많으면 수사력을 자평하고, 적으면 '마약사범이 줄었다'고 자위하는 일은 끝낼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풍선효과(Balloon effect) 탓에 단속과 처벌을 강화할수록 수법이 교묘해지고 더 음지로 파고드는 건 마약도 예외가 아니다.
회의에서 또 한 가지 눈 여겨본 건 '마약 시장'이란 단어가 고유 명사처럼 흔히 언급된 점이다. 우리에게 언뜻 괴리감 없는 이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없을뿐더러, 국내 기관이 내는 보도자료나 언론 기사에서도 잘 볼 수 없다.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모두가 버젓이 있는 것을 없다는 듯 외면하거나 등한시해 왔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교과서 속 통상의 시장 분류에 들지 않는 마약과 그 시장에 대한 수면 위 논의를 확대하고, 마약사범을 잡아넣는데 방점을 찍은 적발 건수보다는 실효적인 실체 파악을 위한 노력과 거시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제언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보고 있고, 봐야 할까
미디어에서 연일 마약이 뜨겁다. 또 마약을 투약한 유명인이, 10대가, 아무개 외제차량 차주가 적발됐단 소식이다. 채널을 돌려봐도 비슷하다. 운전석에서 잠들었다 적발됐단 차량도 거기서 거기라 '이게 그제 본 그게 아닌가' 싶다. 마약 종류나 이름, 은어조차 눈에 익다. 구매 경로라는 어느 앱에 무슨 검색어를 쳐서들 구하는지 알 것만 같다.
화면, 지면이 쏟아내는 기사와 플랫폼에 떠도는 재가공된 영상을 쉽게 접할 이 땅의 초등학생 김모 군, 또 이모 양은 다를까. 마약이 이들에게 어떻게 소비될까 상상해 보면 께름칙해진다. 학교 앞에서 '마약소스'가 들어갔다는 '마약떡볶이'로 요기하고, '마약커피'를 내건 카페 골목을 지나쳐 학원에 가는 김모 군에게 마약은 어떤 경우에도 손대선 안 될 금기 품목이 맞을까? 포토라인에 선 팔로우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모 양은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까?
정부의 정책 기조만큼이나 마약 문제 대응에서 중요한 건 역시 대중의 인식이다. 그동안 대중이 마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대체로 정부의 정책과 장단을 맞춰왔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한 1980년대부터 우리 정부는 엄벌주의를 고수해 왔다. 교육과 홍보 등 수요를 낮추는 방향보다는 단속하고 처벌하는 쪽으로 공급을 억제해 온 것이다.
그러나 마약 관련 콘텐츠를 거부감 없이 여러 미디어와 채널로 접하며 자라온 최근 MZ세대가 마약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그전 세대와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다.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적발 건수에서도 드러난다. 10~20대의 마약 사범 증가폭은 전 연령층에서 가장 가파르다. 10대는 2018년 143명에서 지난해 481명, 20대는 같은 기간 2,118명에서 5,804명으로 각각 3.4배, 2.7배 늘어났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이다. 회의에 참석한 몽골 경찰청장은 "몽골에서 지난 5년 간 마약 사범의 91%가 20대이고, 청소년도 크게 늘어나는 게 주요한 사회 문제"라고 말했다. 심인식 유엔마약사무소 선임연구관은 "텔레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주로 활용되기 때문에 청소년 사용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진단했다.
뉴스를 장식하는 유명인들의 잇단 적발도 늘어나는 청소년 마약 범죄의 배경과 완전히 떼어 볼 순 없을 것이다. 유명인 마약범죄 대응과 관련해 캄보디아의 미스 비리스(Meas Vyrith) 마약청장은 "캄보디아에서는 모든 유명인을 마약 캠페인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라며 "청소년을 상대로 한 마약 교육에 영향력이 큰 유명인이 직접 나서고,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우리 교육부도 지난 7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3을 위한 소양 교육으로 마약 근절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심 선임연구관은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펜타닐 패치를 불법 처방받아 남용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라며 "펜타닐이 얼마나 위험한 약물인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기적인 마약교육 도입이 필요하다며 "청소년뿐 아니라 전 국민이 마약의 위험성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육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약 문제를 다루는 정부 기조를 치료와 관리, 교육과 홍보 등 수요를 낮추는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는 주장은 30년 전부터 있었지만 크게 나아가지 못한 점은 극복 대상이다. 1989년 노태우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마약의 근원적 대책으로 계몽 사업과 중독자 치료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지만, 정부는 여전히 마약사범에 대한 처벌만 있고 치료와 재활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마약사범은 재범률이 50%에 달하는 만큼 치료와 재활이 강조되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2024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마약치료 예산은 4억 1,600만 원이 반영됐다. 보건복지부가 올 5월 기재부에 요청한 예산은 28억 600만 원이었지만 85%가 삭감됐다고 한다. 전국에 마약류 중독자를 위한 지정 치료보호 전문기관은 21곳뿐이다. 인천 참사랑병원과 경남 국립부곡병원 정도를 빼면 전문의가 상주하는 곳은 없다시피 한다. 그마저도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마약 치료 병상을 보유한 인천 참사랑병원은 재정 위기로 폐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치료와 재활의 관점에서 마약사범과 문제를 대하는 시민 인식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약사범을 사회로부터 탈락시키는 시선은 재기를 어렵게 만들고, 다시 음지로 들어가 범죄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이다.
"마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국가의 주도 아래 해방 직후에는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망치고 도둑질하는' 도구로, 전쟁기에는 '전력을 소진시키고 적을 이롭게 하는' 도구로, 경제개발 과정에서는 '국가경제를 좀먹고 사회악을 조장하는' 도구로, 군부의 사회장악 과정에서는 '국가보위'를 위협하는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인' 도구이자 '사회정화와 사회기강 확립'을 위한 '건전한 사회,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도구 등의 이미지로 그려지게 되었다. 이렇게 마약은 민족과 국민, 국가와 사회라는 공공의 키워드에 반하는 형태로, 안보와 경제개발과 같은 국가적 문제에 직접 대치되는 것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갔다. 이에 따라 관련자들도 '국민' 바깥으로 밀려났다.
…
흥미롭게도 이렇게 형성된 마약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과 비판적 인식은 현재까지 한국이 마약에 있어 비교적 안전한 국가로 평가받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엄벌주의에 기초한 정부의 마약 대책과 수직적 통제 방식은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마약에 대한 공포심과 부정적·비판적 인식을 보다 강하게 각인시켰고, 자연스럽게 마약에 접근하는 대상층을 축소시키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약에 대한 경직된 인식이 굳어지면서 마약중독자가 넘어야 할 사회적 경계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마약에 대한 악마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나머지 마약중독자의 치료와 재활 노력을 왜곡하고 사회복귀에 커다란 어려움을 주었으며, 관련자들을 음지로 더욱 숨어들게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
한국에서 마약 통제 과정은 신종 마약이 등장하면 이를 막기 위한 국가의 법률 개정과 규제법 신설이 이어지는, 포섭과 탈주의 연속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역할과 책임 및 권위는 더욱 확대되어 갔으며, 마약문제는 그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가장 좋은 사회 현안으로 기능했다. 이는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한편으로 자생적 마약 이용에 대한 민간의 전통적 권리가 소멸되는 과정이었다."
<마약의 사회사> 中 / 조석연 지음(2021.1.)
일각에선 독립된 마약수사청의 신설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검찰이 마약 밀수를, 경찰이 투약 사범을, 해경이 해상 단속을, 관세청이 국내 밀반입을 맡는 등 다원화된 업무를 한데 모아 효율적으로 하자는 취지다.
실제 검찰과 경찰만 해도 마약 수사 현장의 혼선이 적지 않다. 검찰의 마약수사권은 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가액 500만 원 이상의 마약류 '밀수' 범죄만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러다가 윤 정부 들어 법무부가 지난해 9월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가액의 제한 없이 '밀수'와 '유통' 범죄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했다. 마약 소지와 보관, 투약 등 범죄는 여전히 검사의 수사 개시 범위에서 빠져 있다. 수도권의 한 경찰청 마약수사계 관계자는 "여러 주체와 행위가 거미줄 치듯 연결된 마약범죄의 속성상 무 자르듯 구분을 명확히 하는 건 어렵다"고 설명했다.
마약수사청 신설에 대해 심 선임연구관은 "가질 수 있는 분명한 장점은 마약 정책의 개발"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급과 수요의 억제, 치료와 재활 등이 다 분산 돼 있어 우리나라에는 지금 마약 정책을 누가 주도한다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진단했다. 단독 기관이 하나의 통일된 목표를 가지고 정책을 수립하는 국가들에 비해 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독립 기관 신설에 앞서 비단 수사에만 국한하지 않고 복지부와 식약처, 국가정보원과 금융정보분석원 등 여러 기관에 뻗어있는 기능과 역할, 책임을 재정리하고 유기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독립 기관을 둔 캄보디아의 마약총장은 마약청의 효용성에 대한 SBS의 질문에 "마약청이 있지만 독자적으로 모든 걸 다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여러 기관과 협력과 공조를 바탕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된 기관이 생기더라도 있을 수밖에 없을 한계를 기관 간 상호 보완을 통해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표어 뒤 가려진 이들
"약이 또 생각나서, 참기가 힘들어서요. 어디 털어놓을 데도 없고…."
2018년 겨울 수습기자 시절, 헤로인에 중독된 남성을 만난 적이 있다.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구해 2시간마다 선배에게 보고하는 게 일이었고, 실패하면 야단을 맞았다. 시내 경찰서는 붙잡고 물어볼 민원인이라도 다녔지만 외진 서울 중랑경찰서는 그날 인기척도 없이 썰렁했다. 보고시간이 다가와 초조해질 때쯤 마침 남성이 로비로 들어섰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묻자 돌아온 답이 그랬다. 남성은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팔을 걷어 보여줬다. 추위 탓이라기엔 두 손을 떠는 정도가 심했다.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남성을 따라 나서는 데엔 얼마간 용기가 필요했다. 8시를 넘겨 저녁인지 밤인지 애매한 때였지만 밖은 벌써 한참 어두웠다. 남성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증세가 심할 때 이따금 담당 형사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곁을 떠났다고 했다. 날을 걸러 공사장에 나가 일을 하는데, 챙길 사람도 없으니 해질녘 일당을 받아 들면 '이 돈이면 약을 얼마쯤 살 수 있을까?'부터 떠올린다고 했다. 대화는 담당형사가 남성을 맞으러 나와 끝이 났다.
10분 남짓 만남은 겨울밤을 떠돌던 수습기자에게 다음 2시간의 평화를 가져다줬다. 그 뒤로 간혹 '마약청정국'이란 표어를 마주할 때면, 주체할 수 없이 떨던 손과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며 씁쓸해 하던 남성이 떠오른다. 홀로 분투하다가 경찰서 말고 다른 행선지를 찾기 어려웠던 남성, 이런 '마약사범'이 청정한 표어 뒤에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한다.
(사진=연합뉴스)
한성희 기자 chef@sbs.co.kr